장거리 여행을 포기하니, 휴일이 여유롭다.
그러나 토요일 저녁늦게 집에 내려온 딸아이는 일요일 오후가 되니 강쥐들과 함께 가까운 야외로 바람을 쐬러 나가자 한다.
이 아이가 매주 집에 내려 오는 이유는 99% 강아지들이 못미더워서이다. 부모보단 언제나 강아지 안부가 우선이다.
하기야 요즘엔 거실의 소파마저 강아지 차지가 되어 골방으로 쫓겨가는 것이 힘없는 가장의 신세이니 길게 말해서 무슨 소용이 있으랴.
도심에서 가까우면서도 농촌의 전원 풍경과 물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 어데쯤 있을까 고민하다가 대전동물원 인근 보문산 자락에 자리잡은 무수동 무수천하마을이 번뜩 생각난다. 말 그대로 하늘 아래 근심 없는 마을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 역사와 전통문화 그리고 농촌다움을 함께 보전하고 있는 마을이다.
무수(無愁)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대로 근심걱정 없이 살아온 마을로서 부모사랑의 마음을 간직한 안동 권씨 유회당 종가, 여경암, 거업제 등 역사적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볼거리가 제법 많다.
10여분만에 찾은 무수동마을 바로 앞쪽에는 우리부부의 비밀데이트코스인 침산동 둘레길이 있어 이곳도 같이 둘러 보기로 했다.
입구인 충효문을 들어서면 금붕어와 금잉어가 노니는 활수담이 제일 먼저 반긴다.
활수담을 지나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단아한 모습의 유회당이 나온다. 전면4칸, 측면2칸으로
대청마루가 전면에서 측면까지 이어지는 온돌식 건물이다.
유회당은 조선 영조때 호조판서를지낸 권이진(1668-1734) 선생이 부모의 묘에 제사를 지내면서
독서와 교육을 병행하기 위해 1714년(숙종40)에 건립한 것이다.
유회(有懷)는 부모를 생각한다는 뜻이니 효성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문외한이 보아도 명당이라고 느낄 만큼 안정되고 단아한 모습은 전통에 대한 존경심마저 들게 한다.
유회당판각은 유회당의 글을 모아 246개의 목판을 보관 중인 유형문화재로 당시 성리학의 학문적 추세를 알 수 있고
일본과의 외교에 관한 자료가 있어 국제정세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의 소화전 격인 '드므'
옆에 진품인 것 같은 드므는 형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만큼 파손되어 있다.
유회당 뒤편에 있는 소박한 건축물들. 아마도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은 서당쯤으로 활용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측의 작은 집은 손님방이 아니었을까? 다음에 다시 찾으면 꼭 알아봐야 겠다.
우측에 나 있는 쪽문. 바깥쪽에는 맑은 계곡물이 있어 그 옛날 서당의 학동들이 등줄기가 시원하게 등목도 했을 것이다.
노송을 보호하기 위해 가지마다 지지대 역할을 하는 와이어가 기하학적으로 매어져 있다.
오래된 자연의 솔향은 샤넬향수보다 더 은은하다.
변화의 시대에 300년동안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무수동 마을을 나와 5분쯤 달리면 비밀데이트코스인 침산동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봄옷으로 단장 중이다.
시인 최고야님의 댓글 시를 넣으니 문인화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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