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냉담 중인 아내가 자신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지 인터넷에서 알아 본 되재성당을 찾아가 보잔다.

일명 "부활절 기념 성당 찾기 프로젝트"라고나 할까?

전북 완주군 화산면에 위치한 되재성당은 서울 약현성당(1895년)에 이어 두번째로 지어진 성당이고 한강 이남 최초의 성당이기도 하다. 

대전에서 약 60여km를 떨어져 있는 이곳까지 가려면 중간에 대둔산과 운장산도 지나쳐야 하고 여름 낚시터로 유명한 경천저수지도 나온다.

목적지와 가까워질 무렵에 나타난 경천저수지는 한번쯤 둘러 보아야 했기에(물만 보면 설레이는 낚시꾼의 마음 때문) 네비아가씨의 간절한 안내를 무시하고 저수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확트인 경천저수지의 전망. 제방쪽에선 루어낚시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터보트의 굉음에 놀란 물새들이 황급히 수면 위로 날아오르고.....



금강산도 식후경. 지나가는 길에 한우고기와 붕어찜으로 유명한 화산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성급하게 옆 정육점에서 한우등심을 구입한 덕(탓?)에 정작 맛보려 했던 붕어찜은 다음기회에.....  



되재 본당은 비에모 신부가 1895년에 전통한옥의 형태(정면 여덟칸, 측면 세칸)의 팔작지붕집으로 지은 한국 최초의 한옥성당이다.









왜 명칭이 되재성당이 아닌 되재성당지일까?

이는 엄밀히 말해 원래의 성당은 6.25때 전소되어 지금의 터에 다시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란다.




성당의 내부는 좌우로 칸이 분리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법도인 남녀칠세부동석이 적용된 때문일 것이다.




이쪽이 정면이고 여덟칸이다.  이 성당은 여느 한옥과는 달리 측면이 정면이고 정면이 측면이 된다.


안내판을 요약하면 두 젊은 프랑스 신부가 하나님의 부름으로 이곳 조선의 산골오지까지 오시게 되었고,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해오시던 중 열악한 환경과 질병으로 인해 너무도 빨리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셨다는 내용이다.


120년이 지난 지금. 이역만리 먼 타국에서 선종하신 두 서양인 신부의 묘를 보니 알 수 없는 숙연함에 고개 숙이게 된다.

종교적인 신념이나 사명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 분들이 보인 사랑은 위대했다.


묘지 위의 대리석 십자가는 되재본당에 사목방문 오셨던 뮈텔주교가 1897년 1월22일에 세웠다.


묘지 주변에는 여기저기 예쁜 할미꽃이 피어 있다. 나는 매년 봄이면 피어 올랐을 솜털 보송한 이 꽃속에서 두 신부님를 보았다.


돌아오는 길은 논산 가야곡 방면으로 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탑정호의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대세는 루어낚시인 듯...






되재성당에서 10여분간 간절한 기도를 드린 덕일까?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는 샤프란이 밝아진 모습으로 호숫가를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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