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이냐 친일이냐

 

일본의 아베 내각이 결국 칼을 빼어 들었다.

그들의 입장에선 오랜 기간 꾹꾹 참아 왔던 일들에 대한 보복 차원이겠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면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이다. 언제까지 이런 불편한 관계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경제공동체의 성격이 강한 요즘 국제관계를 고려하면 이웃 국가의 노골적인 경제 제재는 선전 포고와 같다.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개인청구권 인정과 한국 내 일본자산 압류 결정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가간의 조약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주체가 어느 정부이건 잘잘못을 상대국가에 물을 수는 없다. 국제적으로 중재안을 내더라도 우리 측 결정이 불리하다. 그러면서도 왜 무리수를 뒀는지 지금도 의문이다자칫 본전도 못 찾을 시비를 건 꼴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연합국도, 전쟁피해국도, 침탈된 식민지도 아닌 일본 패망 이후 일본으로부터 분리 독립된 나라로만 간주되었기에 전후 보상 대상국도 아니었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그나마 특별협정 대상국으로 인정되어 겨우 맺게 된 것이 1965년 한일협정이다. 이에 따른 보상금(일종의 위로금)도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국가중흥의 중요한 시기에 크게 이바지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오히려 지금 상황이다.

일본의 집권 극우세력과 한국의 집권 좌파세력이 맞붙어 서로의 정치적 손익계산서를 두드린다는 점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이들은 여간해서는 스스로 문제를 풀어낼 것 같지 않다.

 

이번 일이 우리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 것은  일본의 경제제재 조치의 배후에 트럼프가 있기 때문이다. 문대통령의 끊임없는 엇박자 행보와 반일의식 고취로 말미암아 이미 1년 전부터 아베와 트럼프의 머릿속에는 반 문재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적절한 시기를 노려 문재인 때리기를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공격을 감행한 측에서는 매 맞는 대상이 상당한 고통을 느껴서 굴복하거나, 적극적으로 중재를 요청할 때까지, 혹은 내부적 불만이 심화되어 정권교체가 있을 때까지 경제적 압박을 가한다는 목적으로 시작했겠지만, 아마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해 당사국인 한국이 입을 피해를 100으로 봤을 때, 일본도 그 1/10 정도는 피해를 받을 것이고, 미국에게도 북한제재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반대급부로 북러에게 경제안보 면에서 호재이기 때문에, 우방국끼리 자존심 내세우며 오래도록 피 터지게 싸울 일은 아닌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오래전부터 일본과의 과거사 논쟁은 멈춰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모습이 과거에 얽매인 약자의 열등감으로 비춰지는 것이 싫었고일본에 대한 분노가 정의로움으로 포장되는 카타르시스적 민족주의도 싫었다.

거리에 소녀상도 강제징용 배상도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으면 했다. 보상이든 배상이든 돈 몇 푼을 받고 마음에도 없는 사과 한마디 듣는다 해서 과거의 아픈 기억이 치유되는 것도 아니고, 당시 고통 받았던 세대의 삶의 바뀌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제발 정부나 국민들이 시대착오에 빠져 소모적인 복수혈전에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독립한지 이미 74년이나 지났고, 한국의 중심세대는 일제 식민지를 경험하지도 않았다. 쓰라린 역사이지만 지금 세대에겐 지나간 과거의 역사일 뿐이다. 그 과거의 응어리가 국가 간의 관계에 발목을 잡고, 원수처럼 지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조선백성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고, 옛날처럼 가난하지도, 불행하지도, 억압받지도 않는다.

 

단언컨대 우리의 케케묵은 과거사 컴플렉스는 한일 양국의 관계는 물론 우리 자신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의 문제를 남 탓보단 내 탓이라 여기는 반면교사의 마음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현명한 자세다.

 

이번 사태를 보며 문정부의 준비성은 한심한 수준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예측했을텐데, 대응책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싸움을 걸때는 상대방이 휘청거릴 정도의 카운터 펀치 하나 정도는 준비되어야 하는데 아직 아무 것도 내놓지 못하는걸 보면 말싸움으로만 끝날 줄 알았나 보다. 억지 춘향 같은 GSOMIA 파기나 올림픽 불참은 적절한 답이 아니다. 비장한 표정으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라며 대국민 결의를 다지지만 내 귀에는 답답한 옥쇄작전처럼 들린다.


생산 현장에서는 소재나 부품 하나만 빠져도 완성품은 나올 수 없다. 하물며 대체 불가능한 핵심부품이 제 때에 공급되지 못한다면 공장은 그대로 올 스톱이 된다. 혹 제3국이나 국산으로 대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질이 떨어진다면 수출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은 뻔하다. 아직 전초전도 치루지 않았는데 이미 원화의 달러환율은 1200을 넘어섰고, 코스피와 코스닥은 바닥을 쳐 하룻만에 50조가 빠져 나갔다. 경제제재를 당하는 한국에 대한 해외 자본의 심리적 기피현상은 점점 더 심각해질텐데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다급해진 문정부가 소재와 부품 산업을 키우겠다지만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부품을 공급하고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본과의 50년 기술 격차를 단 몇달 안에 따라 잡겠다는 것인지 참 딱하기만 한다정부를 믿지 못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필사적으로 자구책을 강구하겠지만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하게 친일(親日)하고, 지일(知日)하며극일(克日)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싸워 전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사전에 충분한 전력을 비교 분석하고, 적의 장단점을 파악하고지형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였기 때문이다결코 애국심이 넘치고 강한 전투력이 있어서 이긴 것만은 아니다.

나는 문대통령이 꼭 이순신 장군을 본받고 싶다면 지금처럼 우리가 약할 때 대결할 것이 아니라 잠시 후퇴하였다가 승리가 가능한 시기를 노려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한반도가 완전한 하나의 통일국가가 되어 그 역량이 극대화되었을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께선 오해하지 마시길... 사회주의 연방국가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통일이라는 것을.

 

2019.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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